정념의 기-김남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旗)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悲哀)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by 노마드 | 2009/11/05 14:26 | 괜찮게 읽은 시 | 트랙백 | 덧글(0)

여행자

이렇게 가슴이 아픈 영화를 보기도 오랜만이다.

어린애가 버려지거나 고통을 받는 모습을 참기는 참 어렵다.
그런데 영화는 어린애가 버려지고 고통을 받고,
그 고통 때문에 입매를 앙다물고, 그리고 마침내는 그 고통을 경과하여 간신히 세상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는 내내 가슴이 너무 아팠다.

예전에, 국민학교 시절에는, 반에 두세 명씩은 고아가 있었다.
추레한 옷차림과 박박깎은, 또 촌스럽게 단발을 한 머리, 그리고 부르튼 얼굴과 손발로 눈에 두드러졌다.
애써 태연한 척 학교생활을 하려했던 그들이 떠오른다.
영화를 보니, 이제서야 그들의 내면이 이해되는 느낌이다.

감독인 우니 르콩뜨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있는 영화라 한다.
성장하고나면 겉은 멀쩡해질 수 있지만,
그 인간들의 내면은 얼마나 많은 균열들로 채워져 있는 것인가.

by 노마드 | 2009/11/03 17:31 | 내가 본 영화들 | 트랙백 | 덧글(0)

바스터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마음이 상당히 언짢았다.
그의 영화가 유혈이 낭자하고, 숱한 잡담들로 그득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역사를 왜곡했느니 아니니 하는 것은 진지한 영화에서나 할 이야기다.
그에게 애초에 그런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대화의 묘미와 긴장감이 있다고들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영화적 기교로 긴장감을 끌어올렸을 따름이지
대화 자체의 내용에는 전혀 긴장감이 없었다.
대화 이전에 정보때문이며, 대화 이전에 사투리거나 외국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엉성한 이야기 구조.
나같은 논리성, 상황의 합리성을 따지는 인간에게는 헛점이 뻔하여 민망하였다.

그리고 전쟁의 윤리 문제.
전쟁이 근본적으로 그 상대에 대해서는 잔학무도한 것이라고 한다면,
독일측이나 바스터스 측이나 그런 식으로 묘사하는 것이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럴 거면 처음부터 일관되게 시니컬하게 만들었어야 한다고 본다.
첫 챕터에서는 리얼리티를 보여주다가 후반부의 챕터에서는 냉소로 방향을 트는데,
그것은 기만이라고 보인다.

타란티노는 영화를 너무 미끈하게 잘 만들어서 탈이다.
장면 장면의 영화적 긴장감은 최고인데, 돌아서서 보면 찝찝하다.

by 노마드 | 2009/11/02 14:09 | 내가 본 영화들 | 트랙백 | 덧글(0)

내 기억 속의 영화들


문득, 내 기억속을 맴돌고 있는 영화를 기록해놓고 싶어졌다.


시벨의 일요일:
국민학교 5,6학년때쯤 텔레비에서 봤다.
영화가 전달하는 정서란 것을 처음 경험하게 한 영화다.
블레이드 러너의 Roy Batty 하이디 크루거가 나온다.
'내게는 이제 일요일이 없어요'라는 꼬마의 마지막 말은 여전히 귀에 맴도는 느낌이다.

라스트콘서트:
국민학교 시절의 영화다.
영화는 별로인데 신문광고에 나오는 파멜라 빌로르시가 너무 이뻤다.
내 마음을 뺏은 첫 번째 영화배우.
그 사진 구하려고 사운드트랙 엘피판 사서 들었었다.

열혈남아:
왕가위의 초기 작품이다.
감옥에 있을 때 이 영화를 알게 되었는데, 얼마나 보고 싶었던지.
나와서 원없이 되풀이해서 봤다.

아비정전:
개인적으로는 왕가위의 작품 중 가장 낫다고 본다.
정서적 울림이 깊은 데에까지 다다르는 느낌이다.

안개속의 풍경:
테오 앙겔로플로스의 영화.
두 꼬마의 신산한 여정이 가슴아팠다.
그리고 서정적인 음악으로 기억에 남는다.

라임라이트:
찰리 채플린의 소품.
가슴이 따스하였다.

로프:
한 씬 한 컷으로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질수 있다는 기이한 경험.

두 사람:
특수공작원소머즈를 연기하던 린제이 와그너가 나오고, 피터 폰다가 나온다.
아마 정서가 시벨의 일요일과 비슷하지 싶다.
전쟁의 후유증을 앓는 청년이 열찻간에서 만난 여인과 만드는 짧고 쓸쓸한 사랑.

종착역:
비토리오 데 시카가 찝어낸 사랑의  한 순간.

대부2:
아주 오래 전에 이 영화를 보고,
마리오 푸조의 책을 구해 읽었었다.
그리고 다시 텔레비에서 보고,
최근에 또 봤는데 여전히 좋다.

유주얼서스펙트:
브라이언 싱어 감독.
채즈 팔만테리, 가브리엘 번, 캐빈 스페이시...가슴을 뛰게 하는 배우들.
그리고 그, 문제의 카이저 쏘제

로즈마리의 아기:
로만 폴란스키, 그의 섬찟한 감성은 특이하다.
피 한방울 안튀는 공포영화이지만, 보다보면 심장이 오그라든다.
타자란 무서운 것이다.

첩혈쌍웅:
홍콩 조폭영화의 정점이 아닐까.
20여 년 전 청량리 무슨 극장에서 봤는데, 약속때문에 중도에 눈물을 머금고 나와야 했다.
그 뒤를 이어붙인 것은 거의 5,6년 뒤였다.

블레이드 러너:
아마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아닐까.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8월의 크리스마스:

킹 오브 뉴욕:
아벨 페라라는 내가 좋아하는 감독.
크리스토퍼 워큰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총 맞아 죽어가는 크리스토퍼 워큰의 쓸쓸함이 가슴을 미었다.

희극지왕:
한때 주성치에 빠져 지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의 작품 중에서 으뜸으로 나는 꼽는다.
예쁜 장백지.
그리고 페이소스가 짙게 묻어나는 코미디.

007북경특급:
주성치의 엘리베이터 안 싸움을 숨어서 지켜보는 원령의가 너무 이뻤다.

이웃집의 토토로

너구리 대전쟁 폼포코

복수는 나의 것

신체강탈자의 침입

꿈:
구로자와의 여러 작품들 중에서 나는 이걸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에피소드의 여우비 장면.

샤이닝:

욤욤공주와 도둑

알파빌

베를린 천사의 시

화양연화

바보선언:
80년, 서울의 봄의 영향으로 나온 괴물같은 영화.
대학 시절 재개봉관에서 이 영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하나비

송환

파주

<수정중>

by 노마드 | 2009/11/02 00:25 | 일상의 잡담 | 트랙백 | 덧글(0)

화폐전쟁-쑹홍빙

근현대사 특히 현대사를 금융의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배후에 로스차일드 가문의 패권야욕이 개입되어 있음을 밝힌 책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을 들먹이는 것은 지나치게 음모론적으로 기울지 않았나 싶지만,
그 점을 차치하고도 경제의 흐름과 금융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읽을 수 있었던 기회다.
저자는 금태환 화폐의 중요성을 재삼재사 강조하는데,
솔깃한 논리이기는 하지만 내게는 그것의 정당성을 따질 만한 지식이 없다.
공부가 부족한 것이다.
그렇지만 경제사의 맥락에서 금본위제가 왜 무너졌는지를 생각해보면 저자의 논리가 과한 것은 분명하다.

저자는 케인즈와 그 논리에 대해 금융자본의 앞잡이다라고 힐난한다.
그 근거는 케인즈의 논리가 결정적으로 금태환제를 흔들었다는 점인데,
저자의 금태환제 전제를 수용하면 필연적으로 다다르게 되는 결론이다.
그런데 시장 대 정부의 구도 속에서 케인즈는 완전히 다르게 볼 수도 있지 않은가.
결국 금태환제에 기초한 논리는 그것이 시장의 정상작동에 핵심이란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금태환제의 한계를 이해하는 순간 자기논리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책의 후반부는 최근의 경제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 사태의 내적 구조를 설명한다.
대략 알고 있던 내용인데 좀 더 명료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금융자본, 금융공학의 득세가 경제에 치명적인 거품을 끼게 한다는 지적은 깊이 공감하는 내용이다.
사람들은, 세상은 대충 그러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불가항력적으로, 탐욕때문에 거기에 동참한다.
탈출구는, 좀처럼 없다.

...

내용을 떠나서 워낙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주는 책이라
머릿속이 빵빵해지는 느낌이다.
괜찮은 독서였다.

by 노마드 | 2009/10/30 16:34 | 내가 읽은 책들 | 트랙백 | 덧글(0)

파주

한동안은 볼만한 영화가 없더니,
이제는 보고싶은 영화가 쏟아져 나온다.
지금은 블록버스터가 깔리는 시기가 아닌 것이다.

'파주'는 놓치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
심야에 혼자 영화에 푹 잠기는 즐거움을 누렸다.
그리고 지금껏 영화의 잔영들이 마음속을 부유하는 느낌이다.

욕망과 윤리, 그리고 삶에서의 어긋남에 대한 영화로 읽힌다.
윤리의 지반은 일렁이는 욕망위에 간신히 구축되는 것이다.
그것의 허약함을 쉽게 비판할 수 없다.
남자의 이리저리 휘둘리는 운명이 그래서 비통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어긋남이란 인간이란 존재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 아닌가.
내게도 삶이란 어긋남의 연속이다.

...

새삼스럽게, 이런 류의 영화가 내 취향에 맞다란 걸 느낀다.

by 노마드 | 2009/10/29 13:48 | 내가 본 영화들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