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엊그제에는 예전에 같이 일을 하던 동료들이 모였다.
90년대 중반까지는 가끔씩 봤었는데, 그 후로는 모이지는 못했다.
이렇게 저렇게 개인적으로는 만나오기는 했지만...
은연중 다들 마음의 부담이 있었다.
80년대의 끝자락에서 어떤 구심력도 없이 지리멸렬하게 흩어져버렸던 것이다.

내게는 일말의 부담감이 있었건만,
만나자는 연락을 서로가 주고받으며,
이제사 그 시절의 기억을 술안줏거리로 웃어가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구나, 어렴풋이 느꼈다.

의외로 많이 모였다.
사업으로 성공한 이도 있지만, 여전히 신산한 생활을 자초하고 있는 치들도 있다.

살아가는 이야기, 하고 있는 일 이야기, 키우는 강아지 이야기, 그리고,
처음 봤을 때의 인상, 몇 년 몇 월 며칠 날의 행적, 그 시절 누구의 생김새, 그리고,
동료를 잃고 애를 먼저 보내고 또 가족이 흩어졌던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소줏잔을 기울여가며 웃어가며 나누었다.

한 마디 하라길래 이런 얘기를 했다.
'그 시절에는 세월이 지나 우리가 이렇게 만나서 술마시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거다.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겠지만 이렇게 괜찮은 술친구로 남았으니 만족한다.'

술병을 수없이 비워내고서는 노래방으로 옮겨 마이크를 뺏어가며 노래를 불렀다.
만취한 채로 포장마차로 몰려가서는,
다음에는 연락 안닿은 인간들까지 끌어모으자고 하고서야 헤어졌다.

by 노마드 | 2009/11/23 15:33 | 일상의 잡담 | 트랙백 | 덧글(0)

공무도하-김훈

주말에, 주문한 책들이 택배로 도착했다.
기존의 독서를 미뤄두고 김훈을 펼쳐들었다.
집안 일을 하다가 텔레비를 보다가 하나와 놀아주다가
뒹굴뒹굴 거리면서 책을 다 읽었다.
읽으면서 내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하였다.

김훈의 기자시절의 경험들이 곳곳에 녹아있다는 느낌이다.
그 시절의 경험 속에서 꼭 그런 면만을 걸러내었어야 했는가 하는 것은 관점의 문제일 터이지만,
그는, 이를테면, 비관적 현실주의자라고 느껴진다.

살아가는 일이란 것은 근본적으로 저열한 것이고,
그 안에 어떤, 좌든 우든, 이념을 끼워넣는다는 것은
냉정하게 조망해보자면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그는 거듭거듭 말한다.
그리고 그 저열함으로 이루어진 세상은, 자체로서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용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라고 나는 읽었다.

그가 너무 그늘에 집착하는 것이다, 라고 애써 생각해본다.

...

앞으로도 여전히 그의 글을 읽을 것 같지만,
그의 문학적 수사가 좀 지겨운 것은 사실이다.

by 노마드 | 2009/11/23 14:22 | 내가 읽은 책들 | 트랙백 | 덧글(0)

맹인부부가수-정호승

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 길은 멀고 길을 잃었네

눈사람도 없는 겨울밤 이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 없어 노래 부르니

눈 맞으며 세상 밖을 돌아가는 사람들뿐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달래며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랠 부르네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르네

눈 맞으며 어둠 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

노래가 길이 되어 앞질러가고

돌아올 길 없는 눈길 앞질러가고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건질 때까지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함박눈은 내리는데 갈 길은 먼데

무관심을 사랑하는 노랠 부르며

눈사람을 기다리는 노랠 부르며

이 겨울 밤거리의 눈사람이 되었네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었네

오늘 눈이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다.
문득 머릿속에 이 시가 맴돌았다.

오래 전에 노래로 만들어져 많이 불리워졌었다.
찾아보니 안치환과 노찾사가 부른 것이 있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던 시절이 생각난다.
오늘 밤에는 그 시절의 친구들을 만난다.

by 노마드 | 2009/11/20 13:29 | 괜찮게 읽은 시 | 트랙백 | 덧글(0)

성민양꼬치-서울대입구역

서울대 입구 근처에서 소문이 자자한 성민양꼬치다.
성민양꼬치 맞은편에는 같은 주인이 운영하는 성민샤브샤브가 있다.

주인 양반이 부지런히 양꼬치 요리를 하고,
아마 할머니인 듯한 분이 성민이-귀엽다-를 업고안고 다니며 놀아준다.
가끔 성민이가 포대기에서 풀려나와 테이블 사이를 뛰어나니며 재롱을 떤다.

양꼬치 양갈비 꿔바로우(탕수육)를 먹었다.
봉천동의 양꼬치집들이 보다 현지의 정통적인 맛을 보여준다면,
성민의 양꼬치는 한국식의 맛으로 순화된 듯한 느낌이다.
꿔바로우는 간결한 맛이다.

칭따오 맥주를 벗하여 푸짐하게 먹었다.

by 노마드 | 2009/11/16 15:39 | 식당, 먹을꺼리 | 트랙백 | 덧글(2)

송수사-안양 비산동

안양 비산동의 운동장 입구 쪽에 있다.
안양서는 워낙 유명한 집이다.
손님들이 쉬임없이 몰려오는 터라,
일식집이기는 한데 동네 횟집 분위기같은 떠들썩한 맛도 있다.

사시미코스를 먹었다.
보통 일식집에서 나오듯이 일련의 요리들이 주욱 나온다.
좀 배가 고픈 상태에서 갔던지라 정신없이 먹었다.
세밀한 맛을 자랑한다기 보다는 무엇이든 기본 이상을 한다는 느낌이다.
서울 강남의 일식집에 비견할 것은 아니지만,
동네 횟집에서 어줍잖게 먹고 입맛 버리느니 이게 훨씬 낫다는 느낌이다.

by 노마드 | 2009/11/16 15:35 | 식당, 먹을꺼리 | 트랙백 | 덧글(0)

프라이버시의 철학-이진우

돌베게에서 석학인문강좌 시리즈로 나온 책 중 하나다.

속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개인주의와 자유의 의미를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다시 정초하고
그것의 실현에 긴요한 프라이버시의 중요성을 탐구하는 책이다.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의 사적영역의 의미와 프라이버시의 가치는
아렌트와 하버마스의 논의를 빌려와서 논증을 하는데,
하버마스쪽이 더 와닿았다.

프라이버시의 요소들을 논증하는 방식은
홉스와 로크, 칸트의 논리를 동원한다.
로크의 소유권 이론에서 프라이버시의 핵심요소 중 하나로 소유문제를 끌어내는데,
프라이버시를 떠나서 소유권의 중요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후반부는 공간과 소유, 그리고 인격-결정이라는 프라이버시의 요소들을 설명하는데,
이 부분은 평이했다.
현실과 만나는 부분이기는 한데,
책 중반부에서 철학자들의 논리들을 끌어와서 논의하는 대목에 비해 힘이 떨어졌다.
...

언뜻 인터넷을 돌아디니다 보니,
미수다에서 루저 논란을 불러일으킨 여대생의 정보가 마구 유출되는 사태에 대해,
심각한 사생활 침해라고 지적한 글이 눈에 띈다.
권력에 의한 프라이버시 침해도 문제이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잔인하게 취급하는 것이 더 문제일 수 있다.
책에서는 타인에 대한 이해가 모두의 프라이버시를 유지할 수 있는 기본적 덕목이라고 되어 있다.
안이한 해결책이기는 하지만 출발점인 것은 사실이다.

by 노마드 | 2009/11/13 13:07 | 내가 읽은 책들 | 트랙백 | 덧글(0)

수능

오늘은 수능을 치는 날이다.

내가 수능-그 시절에는 학력고사였지만-을 친 지도 20여 년이 지났다.

고등학교 시절, 수업은 재미가 없었고 또 수업에 흥미도 거의 없었다.
선생들은 권위적이었고 수업은 주입식이었다. 그리고 교련수업은 죽기보다 싫었다.
지금도 내 인생에 가장 암울했던 시절을 꼽는다면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를 정도다.

뜻이 맞는 친구들이 한둘 있었지만, 그 관계를 심화시킬 힘이 그 나이에는 서로에게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주변 눈치를 봐 가면서 성적관리나 하고,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보냈다.

고3이 되자 점점 분명해진 사실은,
지긋지긋한 이 수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리고 집-대구를 벗어나는 방법은
시험을 잘 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자유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래서 학력고사용의 공부를 했다. 열심히 했다.

우연찮게 수능을 두 번 봤었다.
처음 친 시험은 별로 기억이 없는데 두 번째의 시험 기억은 생생하다.
앞 자리인가 옆 자리인가의 친구가 열심히 내 답안지를 컨닝했다.
(그 친구, 아마 나중에 점수표 받아보고 화들짝 놀라지 않았을까)
시험 치고 나오니 아버지가 정문간에 서 계셨다.
시장통에서 국밥을 사주면서 아버지의 소망을 넌지시 말씀하셨었다.
처음에나 두번째나 부모님의 뜻은 따르지 않았다.
이제서야 후회가 된다. 어차피 날림으로 대학 생활 할 거였으면서 한 번은 뜻을 따라드렸으면 좋았을텐데 하면서.

...

수능이 한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가.
불행하게도 그렇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조금, 아주 조금은 느슨해졌겠지만, 압도적인 다수에게는 여전히 그렇다.
나 역시 그 자장의 언저리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이런 사실을 되풀이해서 환기하게 되는 날이다.

by 노마드 | 2009/11/12 15:17 | 일상의 잡담 | 트랙백 | 덧글(0)

팔선생-평촌

팔선생은 평촌에도 있고, 강남의 르네상스호텔 뒷골목에도 있고, 사당동 아구골목에도 있다. 아마 더 있겠지?

오래 전부터 이집저집 들락였었다.
한국식 중국요리를 약간 부담스러워하던 차에 팔선생은 중국인 현지 요리사들을 데려와 중국식으로 요리한다.
인테리어도 중국풍이고 종업원들도 연변사람들이다.
그것이 맛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닌데, 간단간단하게 조금씩 요리해내는 방식이 부담이 덜하다.

중국식 요리 이름을 외우지는 못하겠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탕수육이 고소하게 맛있고, 간단한 닭고기 볶음, 쇠고기 볶음등도 먹을만하다.
전가복이나 오향장육같은 것도 떠들썩하게 나오지 않고 심플하다.
내가 느낄 때는 전반적으로 간결한 맛이다.

외국의 차이나타운이나, 특히 중국을 떠돌아다닐 때, 그 동네 식당서 중국요리를 시키면 대충 이런 식으로 나왔었다.
요리라기 보다는 끼니 개념이었던 것이다.
팔선생은 그보다는 조금 더 한국회되었다고 보인다.

by 노마드 | 2009/11/09 14:04 | 식당, 먹을꺼리 | 트랙백 | 덧글(0)

정념의 기-김남조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없는 것 모양 걸려 왔더니라.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눈길 위에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마음의 기(旗)는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나에게 원이 있다면,
뉘우침 없는 일몰(日沒)이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그 일이란다.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悲哀)가
맑게 가라앉은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벗은 없을까.

내 마음은
한 폭의 기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서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by 노마드 | 2009/11/05 14:26 | 괜찮게 읽은 시 | 트랙백 | 덧글(0)

여행자

이렇게 가슴이 아픈 영화를 보기도 오랜만이다.

어린애가 버려지거나 고통을 받는 모습을 참기는 참 어렵다.
그런데 영화는 어린애가 버려지고 고통을 받고,
그 고통 때문에 입매를 앙다물고, 그리고 마침내는 그 고통을 경과하여 간신히 세상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는 내내 가슴이 너무 아팠다.

예전에, 국민학교 시절에는, 반에 두세 명씩은 고아가 있었다.
추레한 옷차림과 박박깎은, 또 촌스럽게 단발을 한 머리, 그리고 부르튼 얼굴과 손발로 눈에 두드러졌다.
애써 태연한 척 학교생활을 하려했던 그들이 떠오른다.
영화를 보니, 이제서야 그들의 내면이 이해되는 느낌이다.

감독인 우니 르콩뜨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있는 영화라 한다.
성장하고나면 겉은 멀쩡해질 수 있지만,
그 인간들의 내면은 얼마나 많은 균열들로 채워져 있는 것인가.

by 노마드 | 2009/11/03 17:31 | 내가 본 영화들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